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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1년 내내 점심 도시락을 혼자 먹었던 적이 있다. 그 전부터 나는 여자애들과는 친구가 되기가 어려운 타입이었긴 했지만, 그래도 그게 어떤 눈에 보이는 갈등을 일으킬 정도가 된 건 그때가 아마 처음이었던 듯 싶다. 학년이 바뀌어 아직 서로 낯도 설었던 그때, 같이 점심을 먹던 아이들 중의 몇명이 어느날 점심 시간에 나에게 이야기를 했던 것이 시초였다. 함께 밥 먹기에는 우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그러니까 내일부터 넌 따로 밥을 먹으렴. 그 말을 하던 그 애 건너편에 이미 애들은 모여서 밥을 먹고 있었다. 자리를 옮기려고 들었던 도시락통을 다시 내려놓으면서 나는 작게 대답했다. ...그래, 알았어.
그리고 해가 바뀌어 그 애들과 헤어질 때까지, 1년 내내 나는 도시락을 혼자 먹었다. 내가 다른 애들에게 다가갈 수고도 할 필요가 없이, 그 그룹이 아닌 다른애들도 내가 다가가기 전에 먼저 선을 그어주더라. 점심 시간, 여기저기 모여서 도시락을 먹는 애들과, 아무도 없어 휑한 내 주변을 기억한다. 혼자 꾸역꾸역 점심을 먹던 기나긴, 기나긴 점심시간. 그리고 내가 빠진 후 오히려 더 많은 애들이 함께 밥을 먹게 된 그 그룹은 이런 이야기에 흔히 따라오는 결말같은 거겠지. 가슴이 아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나 혼자 숟가락을 놀리는 일 뿐이었으니까. 그렇게 그 일년을 지내고, 그 후에는 그런 일을 겪는 경우는 없었다. 내가 바뀐 것인지, 아니면 다른 애들이 바뀐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찌되었든 그렇게 그 기억이 내 안에서 잊혀져갈 무렵, 나는 내가 겪었던 저 일년을 정의하는 용어를 만나게 되었다. 일본어로는 이지메, 한국어로는 왕따. 지금 생각해 보면, 내 1년간의 경험이야말로 왕따라는 카테고리에 말그대로 딱 들어맞는다. 아마도 그 그룹 중의 리더가 내가 맘에 들지 않았던 것이겠지. 그리고 보란 듯이 더 늘어난 그룹의 수도 그러하고.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분명히 이 용어들로 정의되기 전까지, 나는 단 한번도 내 경험을 정의하려고는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건 분명히 쓰라리고 아픈 경험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나를 견딜 수 없도록 하거나, 혹은 그 경험 때문에 내가 바뀌었다라는 느낌을 가져본 적은 없다(물론 그 이후에는 좀더 노력해서 적극적으로 친구들을 사귀려고는 했지만). 갈 곳이 없다는 느낌이 없었다고는 말 못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도 날 이해하지 못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슬픈 경험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난 비참하지는 않았다. 그건 그 애들과 나의 문제였고, 맞음과 맞지 않음의 문제였으며 만약 그 애들이 나를 끼워준다고 해도 그 애들에게 나를 맞추기가 더 어려웠을테니까. 아이로니컬하게도, 그래서 나는 그때 아직 이지메와 왕따라는 말이 없었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다. 그 애들이 한 짓이 잘한 짓이라고는 전혀 생각치는 않을 뿐더러 나름대로 마음의 상처도 되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그래도 저 단어들이 내포하는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구도 속에 나를 위치시키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으니까 말이다. 그때의 나를, 나 자신조차 불행하게 생각하지 않는데 누가 그럴 권리가 있다고? 나는 나와 내 상황을 판단한 권리를 그 누구에게도 주지 않을 것이다- 일방적인 약자가 되어 동정을 받느니 차라리 죽어버리겠어. 그게 내 자존심이고 나를 지탱하는 원동력이며, 아마 어린 시절의 저 1년을 아무 일도 아니었다는 듯이 훌훌 털어버릴 수 있었던 이유가 아닐까 싶다. 세상은 삭막하고, 무엇 하나 자신의 뜻대로 되는 것은 없다. 인생에는 기쁨이 되기보다는 상처가 되는 일이 훨씬 더 많다. 그럴 때마다 겪을 수 밖에 없는 그 쓰라림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경우 트라우마, 혹은 마음의 상처란 그것을 "인식"하느냐 아니냐의 문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것을 판단하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이다. 그것을 잊지 말자, 나를 판단할 기준을 남에게 넘겨주지는 말자. 적어도 가엾고 불쌍한 대상은 되지 말자. 그건 나를 두번 죽이는 일이니까. 낯설고 물선 이곳에서의 생활에 지치고 힘들다 생각할 때마다, 몇 번이고 다짐하는 것은 이런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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